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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최종문의 펀펀야구] 세이브 투수의 탄생 비화(상)
작성자 사무국 조회 3829
작성일 2012.05.22 오후 3:29:04
 프로야구 원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와 OB 베어스는 라이벌이었다. 호화군단이었던 삼성과 박철순을 앞세운 OB는 원년의 패권을 놓고 매번 치열하게 붙었다.

경기 초반부터 타격에 불이 붙어 삼성이 10점차로 크게 앞선 어느 날 경기였다. 전세가 기울자 OB의 투수가 타석에 들어선 오대석에게 몸에 맞는 볼을 던졌다. 고의성이 강한 투구였다. 오대석이 분을 삭이지 못하자, 더그아웃엔 순간 긴장감이 돌았다.

삼성의 투수는 권영호였다.

이제 한 회만 넘기면 승리투수 요건이 주어지는 순간이었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이후 OB의 세 타자가 연속으로 공에 몸을 맞았고 권영호는 실속 없이 강판당했다.

팀 사기를 앞세운 그를 맞은편 벤치에서 지켜보던 OB 김영덕 감독이 기가 찬 듯 모자를 벗고 연방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김영덕 감독이 후에 삼성으로 부임해 그를 세이브 투수로 낙점한 것도 이때 그의 주저 없는 결단력과 담력에 강한 인상을 받았던 때문이었다.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롯데에 패한 뒤 발 빠른 1번 타자를 원했던 삼성은 MBC의 이해창과 은밀하게 트레이드를 시도했다. 상대는 투수를 원했다.

김영덕 감독이 황규봉, 이선희, 권영호를 함께 불렀다. 플로리다 전지훈련이 임박한 시기였다.

"서울 가고 싶은 사람."

딱히 누구를 정하지 않아 내심 의향을 떠볼 심산이었다.

"저요."

눈치를 보고 있던 세 사람 가운데 권영호가 서슴없이 먼저 손을 들었다.

이틀 뒤 이선희와 이해창의 트레이드 기사가 신문에 큼직하게 실렸다.

김영덕 감독은 권영호의 주저 없는 성격이 또 한 번 맘에 들었고 결국 이선희 카드를 내놓았다. 그러나 권영호는 당시 집이 서울이었기 때문에 가고 싶어한 것뿐이었다.

플로리다 다저스캠프 전지훈련은 김영덕 감독에게 두 가지 큰 깨달음을 남겼다.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와 세이브 투수의 개념이었다.

당시만 해도 세이브 투수의 개념은 전혀 도입되어 있지 않았던 때였다. 급하면 선발도 마무리로 나서야 했고, 정해진 이닝도 따로 없었다. 그저 구위에 따라 임기응변식이었다.

사실 메이저리그에서도 세이브가 공식적으로 도입된 건 1969년이었다. 당시에는 마지막으로 던진 투수에게 무조건 세이브가 주어졌다.

그러다 1973년에 구체적인 규정의 틀이 잡혔는데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지적에 따라 1975년부터 3점 차 이하로 앞선 상황에서 1이닝 이상을 던져 리드를 끝까지 지킨 투수, 주자나 타자 또는 다음 타자가 득점하면 동점이 되는 상황에서 등판하거나, 이긴 게임의 마지막 3이닝을 던진 투수로 완화돼 적용했으니 세이브 제도의 보급이나 현장에서의 운용 기술은 미국에서도 막 꽃이 피려던 때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영덕 감독은 즉시 세이브 전담 운영을 실천에 옮겼다.

김일융, 김시진 등 선발투수를 제외하고 꼽은 적임자가 황규봉과 권영호였다.

그러나 원년 15승을 거둔 두 투수는 자존심이 강해 반응이 냉담했다. 딜레마에 빠진 순간이었다.

야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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