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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최종문의 펀펀야구] 삼성 우승의 원전 <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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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사무국 | 조회 | 5373 |
작성일 | 2012.12.12 오후 5:41:41 | ||
선수단 간섭 배제로 내부 결속, 원로·주민 등 초청 외부와 소통
삼성 라이온즈는 이전에도 숙원을 풀 기회가 한 번 있었다. 198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목전에서 놓치고 나서 이달종 당시 단장은 실패를 거울삼아 1985년엔 아예 현장을 중심으로 한 운영에 치중했었다. 적지않은 간부들이 역할론을 들먹이며 불평했지만, 그는 신속한 현장지원을 위해 '선집행, 후정리'를 감행하면서 세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픔을 겪은 선수단의 목표의식도 강했지만, 현장중심의 운영은 선수들의 사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1985년엔 전`후기 통합우승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를 통하지 않은 리그 통합우승을 진정한 우승으로 인정하지 않은 분위기가 문제였다. 프런트는 이미 우승을 만드는 방법에 다가서 있었지만 스스로 의미를 퇴색시키면서 애써 우승에 이르게 한 길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말았다. 중심에 섰던 이달종 단장도 경기대 교수로 이직하면서 실패의 악순환은 다시 시작됐다. 김재하 단장은 이를 간과하지 않았다. 그리고 선수단에 대한 일체의 간섭을 배제하려고 내부의 결속을 우선했다. 연봉, 스카우트, 분석시스템, 홍보, 현장의 효율적 편의 등에 관해 프런트는 성적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최선의 지원을 위한 엄격한 내부 체질개선을 시작했다. 평소와 다른 의식개혁은 많은 고통이 따랐고 자리를 떠난 간부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능력이 배양되고 자신의 영역에 전문화되면서 일사불란한 팀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한편으로 냉정하고 잔인한 삼성의 이미지를 벗겨 내기 위한 부지런한 외부 행보도 병행됐다. 전직 삼성 감독을 안양컨트리로 초청해 매년 정기적으로 골프 회동을 하면서 그들의 지난 앙금을 풀어내고 조언을 받기 시작했다. 언론과 방송관계자를 찾아가 대화와 교류도 마다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TV를 시청하고 모든 신문을 정독하고서 야구해설가와 방송뉴스 및 기사를 쓴 언론사의 기자와 전화통화를 하는 일이 업무의 시작일 만큼 관심을 기울였다. 소원했던 아마추어 지역 야구 원로들과 회동도 하고 지역의 야구관계자들과의 자리도 잊지 않았다. 떠난 전직 직원들과의 모임을 정기적으로 주선한 것도, 야구장 주변의 주민들이 갖는 불만을 듣고자 고성동 주민대표와 만난 것도 김 단장이 처음이었다. 부단한 정성을 기울인 시간이 흐르자 마침내 들려온 소리가 있었다. "삼성도 이제 우승을 한 번 해 봐야지." 돌아섰던 민심이 되돌아온 순간이었다. 그는 김응용 감독을 영입하고 그에게 간섭을 배제한 전권을 부여하며 적을 만들지 말라는 세 가지를 이룬 후 기다렸다. 기다림의 연속이었지만 마침내 극적인 우승으로 화답(和答)했다. "인체의 코는 몇 분만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다. 야구단의 지원이 바로 그런 것이다. 인체의 입이 잘못하면 가장 먼저 맞는 것도 튀어나온 코다. 야구단 프런트가 바로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막강한 삼성 프런트를 만든 김재하 단장의 지론이었다. 해태의 인물들을 영입해 비난을 받았지만, 최강 삼성으로 변한 지금에 이르러 역사는 어떤 평가를 할까? 야구해설가 매일신문 공식트위터 @dgtwt / 온라인 기사 문의 maeil01@msnet.co.kr ⓒ매일신문사,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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