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게시판공지사항
| 제목 | 칼럼중에서-제목:인연은 비켜가지 않는다. | ||
|---|---|---|---|
| 작성자 | 사무국 | 조회 | 2130 |
| 작성일 | 2007.10.31 오전 11:45:37 | ||
| 첨부파일 | |||
|
꼭 만나야 할 인연은 묘하게도 비켜가지 않는가 보다. 필자(사무국장 본인)의 경우가 그랬다. 1983년 프로야구 태동 2년째 영남대 선박용기계과 4학년이었던 필자는 일요일마다 모교인 대구고등학교 야구장에서 사회인야구 경기를 취미삼아 하고 있었다. 7월무렵 이었나보다. 한창 경기중이었는데 느닷없이 삼성라이온즈 버스가 들이 닥쳤다. 원정 이동전에 잠시 1시간만 연습을 하잔다. 하늘같은 프로인데 감히 거역할 수 없었고 우리는 담벼락밑 풀밭에 앉아 프로의 연습을 꿈결처럼 지켜보았다. 매니저가 다가와 경기를 중단시켜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건네며 연습을 도와줄 아르바이트 불펜포수가 필요한데 추천할 만한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팀내에 선수출신이 한명 있어 의향이 있는지 물어봤더니 당연히 하고 싶단다. 며칠뒤 홈 경기때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당일 시민운동장 야구장으로 찾아 갔는데 이 친구는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소개차 같이 가기로 했는데 뜻밖에 필자만 남아 엉뚱하게 역할을 대신하게 되어버렸다. 나이트경기였는데 연습복을 갈아입고 불펜으로 나갔더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오늘만하고 말아야지 마음먹고는 안절부절 걸어가는데 황규봉.김시진.이선희.권영호등 기라성같은 투수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게 아닌가. 등줄기에 식은땀이 저절로 흐르는데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처음 볼을 던진 투수는 황규봉 투수였는데 신기한 것은 그 빠른 볼들이 전혀 빠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놓치면 큰일 난다고 생각해 엄청난(?) 집중을 했기 때문이리라. 어쨌든 그날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지금도 아득하고 아련하다. 첫날을 무사히(?) 넘긴 필자는 다음날에도 같은자리에 서게 됐고 이후 원정경기에도 동행을 하게 됐다. 원정경기때 필자는 종종 기록원 방에 들리곤했다. 당시 기록원은 고등학교 교사 출신으로 야구기록의 전문교육을 받은 기록원이 아니었다. 늘 연봉을 채점하는 문서를 펼쳐놓고는 끙끙대고 있었다. 일본 프로야구단에서 흘러나온 경기평가 채점문서를 그대로 번역한 것인데 항목만도 투수및 수비,타격을 합해 200여개나 되었고 일일이 한타석마다 평가된 채점 점수를 좁은 공간에 써넣어야해 몹시 힘들어했다. 별일이 없었던 필자가 가끔 방에 들러 도와주곤 했는데 시즌이 끝난후 그 기록원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가 남긴 것은 아직도 채점하지 못한 반 시즌 분량의 텅 빈 채점 문서였다. 시즌은 끝나 곧 연봉을 산정해야 하는데 문서를 처리할 사람이 없어 난처하게 되었다. 어느날 매니저가 서류뭉치를 건네주면서 열흘간 시간과 수당을 줄테니 한번 해보라고 권해왔다. 못해도 좋으니 한번 해보라는 것이었다. 미적미적 서류를 받아 집으로 돌아온 필자는 채 두경기를 넘기지 못하고 눈이 아파서 손을 들고 말았다. 머리맡에 던져둔채 한 이틀을 바람을 쐬고 돌아 왔는데 귀신도 깜작 놀랄 일이 벌어져 있었다. 누군가 어느새 빈 공간을 모조리 채워 놓은 것이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아무도 몰래 서울에서 대한야구협회 공식기록 수업을 받은 야구광이었던 필자의 동생(최종태:전 달구위너스 감독)이 재미삼아 해놓은 일이었다. 도시락까지 싸들고 야구장을 즐겨 찾았던 필자의 동생 덕분에 일주일을 푹쉬고 서류를 제출한 필자는 동생 대신 구단의 공식기록원 업무를 제의 받았고 그길로 조선소 대신 그라운드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 |
|||
| 이전글 | 칼럼중에서 제목:세대교체 | ||
| 다음글 | 11월3일 경기일정-확정 | ||



목록보기